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드리 셰브첸코 (문단 편집) == 여담 == * [[첼시 FC|첼시]] 시절 [[존 테리]]를 응급처치로 살려준 것 때문에 "[[의대]] 지망생이었다.[* 정작 [[의사]] 출신 축구 선수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황금의 사중주의 주장이었던 [[소크라치스]]였다. 아르헨티나의 수비적 실리축구 사조인 빌라르디즘의 [[카를로스 빌라르도]]도 의대 다니면서 축구 선수를 했다.] 20살 때부터 축구를 했다."라는 루머가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셰브첸코는 10살의 나이로 [[FC 디나모 키이우|디나모 키이우]]의 유스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18살에 프로 데뷔를 한 선수다, 월간 포포투 2010년 10월호에 셰브첸코의 인터뷰에서 자세히 알 수 있는데, 셰브첸코는 키이우 대학에 입학하려 했지만, 테스트에서 떨어지자 전차부대 대령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군인]]이 되길 고민했다고 한다, 2달 뒤 디나모 키이우의 1군 선수가 되자 테스트를 보지도 않고 입학시켜 줬다고 한다.[* 입학 테스트에서 코치 몇명이 자신의 드리블과 다른 몇가지가 마음에 안들어 떨어졌다고 한다. 이 부분만 봐도 의대를 지망했다 라는것은 거짓임을 알 수있고, 어려서부터 [[복싱]], [[레슬링]], [[아이스하키]]도 할 정도로 [[스포츠]] 중독이었다고 한다.] * [[호나우두]], [[티에리 앙리]], [[뤼트 판니스텔로이]]와 더불어 2000년대 초반 국내 해축팬들에게 일명 '4대 스트라이커'로 통했다. 이 넷 중 누가 제일 뛰어나냐는 떡밥이 종종 던져지지만 보통은 호나우두를 맨 앞에, 반니를 맨 뒤에 놓고 앙리와 셰바 중 누가 나은지는 [[키배]]로 따지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전반적으론 앙리를 위에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셰브첸코보다 앙리가 툴이 더 많았고, 커리어적으로도 앙리가 아스날에서 맹활약하고 말년에 바르셀로나에서도 트레블 멤버로 월드클래스급 활약을 펼친 반면, 셰브첸코는 AC 밀란 시절까지 보여준 퍼포먼스는 앙리에게 전혀 밀리지 않지만 첼시로 와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고 후에 밀란으로 복귀해서도 재기에 실패했기 때문에 발롱도르 수상자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 비전문가를 통틀어 앙리보다 조금 낮은 평가를 받는다. 다만 [[FC 디나모 키이우|디나모 키이우]]에서 [[FC 바르셀로나|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 [[아스날 FC|아스날]], [[FC 바이에른 뮌헨|바이에른 뮌헨]] 등 유럽 빅클럽들을 상대로 선보인 활약과 챔스 득점왕 2회(1998-99, 2005-06 시즌) 등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의 퍼포먼스면에선 앙리보다 셰브첸코를 위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hevchenko.jpg|width=100%]]}}} || * [[첼시 FC|첼시]]의 이른바 "고액 이적료로 첼시에 온 180cm 이상의 잘생긴 백인 공격수는 망한다"는 징크스의 시작점이었던 만큼 선수 시절엔 외모로도 나름 유명했다. 다만 2022년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M자 탈모]]가 진행중인 것이 밝혀졌다. --주륵-- * 어깨에 한자 정자체로 '大龍'이라는 문신을 새겼다. 셰우첸코가 태어난 해인 1976년이 용의 해라 새겼다고 한다. * 한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이 부정하게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를 꺾었다며 한국을 비난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본인은 그런 적 없다고 인터뷰에서 해명했다. 그러는 와중에 자기는 [[안정환]]에 대해 처음 듣는 이름이라며 안정환에게 굴욕아닌 굴욕을 안겨주기도 했다.[* 한국 기자가 "당신이 했던 비하는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길 수 있었던 건 홈 어드밴티지 때문이고, 당시 [[AC 페루자 칼초]]에서 뛰던 이류선수 안정환의 골로 이탈리아가 탈락했다는 내용이었다" 라고 하자 셰브첸코는 "저는 안정환이 누군지도 모르는데요?" 라고 했다.] * 셰브첸코의 모국어는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이고 [[이탈리아]]에서 선수생활을 오래 한 탓에 [[이탈리아어]]도 잘 사용했지만 [[영어]]는 잘 못했다.[* 영어를 잘 못한 것이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부진에 일정 부분을 차지했지만 안드리처럼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 [[카를로스 테베스]]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득점왕을 기록했었다.] 우크라이나어도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서 기자회견에서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했으나, 2010년대 중반 이후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https://twitter.com/ZoryaLondonsk/status/1374292437703798784|아직 서툴긴 하지만 우크라이나어를 중점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공식석상에서 러시아어보다 우크라이나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언어들을 계속 공부하면서 선수 시절과는 달리 영어에도 꽤 능숙해졌다. * 첼시로 이적한 2006년부터 가족과 함께 런던에서 살고 있으며, 2006년에 첼시에 이적하고 태어난 둘째 아들이 [[https://www.chelsea-news.co/2019/09/chelsea-academy-snapped-former-blues-strikers-son/amp/?__twitter_impression=true|첼시 유스에 입단했다고 한다.]] 셰브첸코의 아들이 장성하여 국가대표로 발탁될 실력을 갖춘다면 아버지의 나라인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우크라이나]], 어머니의 나라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미국]], 자신이 나고 자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영국은 자국에서 태어난 뒤 10년 간 거주하고, 그 기간에 해외체류 기간이 90일을 넘지 않으면 국적을 부여한다. 2006년 이후로 줄곧 런던에서 거주하였다면 이 기준에 부합하여 세브첸코의 둘째 아들은 잉글랜드 국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같은 이유로 2000년에 영국 [[리즈(도시)|리즈]]에서 태어난 [[엘링 홀란]]은 6살이 되던 2006년에 영국을 떠나 [[노르웨이]]로 귀국하여 2019년까지 거주하였으므로 영국(잉글랜드) 국적이 없다.] 중 한 나라를 선택할 수 있다. 추후 밝혀진 사항으로 이름은 크리스티안 셰브첸코이며, [[야야 투레]]가 감독으로 재직 중인 [[토트넘 홋스퍼 FC|토트넘 홋스퍼]] 산하 유스로 옮겼다.[[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117&aid=0003682118|#]]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하여 징집되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2월 24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명한 국가총동원령에 의거 신체적, 정신적으로 군복무가 불가능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18~60세 남성이 병역특례 등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징집대상이 된다. 다만 해외거주자들은 개인 사정이 있기 때문에 [[안드리 루닌]]처럼 팀에서 비주전 혹은 전력외로 분류된 선수들은 바로 귀국절차를 밟고 있으나, 진첸코처럼 주전급 선수들은 좀 더 기다리는 모양새이다. 물론 전쟁이 장기화되면 결국 이들도 모두 귀국해야 한다곤 하는데 세계대전인 상황에서도 끝내 귀국 안 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본인이 귀국을 거부하고 버티면 안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런던]]에 거주 중이기 때문에 아직은 [[영국]]에 있으며, [[트라팔가 광장]]에서 있었던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한 것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였다. >우크라이나는 내 조국이다. 항상 내 민족과 조국을 자랑스러워했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30년 동안 하나의 국가를 이뤘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의 나라,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모두가 힘든 시기다.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승리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 한때 친러 성향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지지자였고, 셰브첸코 본인도 친러 성향이 강했지만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터지고 나서는 전쟁 반대 성명을 내고 친러 성향도 버렸다. * 2022년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생한 150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피난처를 제공하고 난민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집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https://n.news.naver.com/sports/wfootball/article/411/0000007756|#]] *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어머니와 누나가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누구보다 소망하고 있다. 멀리 런던에서도 조국을 위해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고, 반전 시위 등도 거리낌 없이 참여하고 있다. 조국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에 많은 사람들이 그와 우크라이나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 전쟁이 끝날때까지 축구계로 복귀할 일은 없다고 못박았다. * 우크라이나 정부가 세운 우크라이나 재건 펀드 UNITED 24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파일:골닷컴 시대별 최고의 선수.png|width=75%]]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선수 5인을 선정했는데, 2000년대 최고의 선수 5위에 이름을 올렸다. * [[우크라이나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나톨리 티모슈크]]처럼 유명세를 떨칠 당시 [[우크라이나어]] 표기법이 정립되지 않아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발음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다만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에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한민국 언론들에 우크라이나 지명들을 러시아어식 표기에서 우크라이나어식 표기로 교체해달라고 제안했고, [[국립국어원]]에서 이 요청을 받아들여 우크라이나어 한글 표기 자료를 [[https://www.korean.go.kr/front/etcData/etcDataView.do?mn_id=208&etc_seq=688|누리집에 게재]]하면서 셰브첸코의 공식표기도 우크라이나어 발음에 더 가까운 ''''안드리 셰우첸코''''로 확정될 가능성이 생겼다.[* 국립국어원의 결정과 별개로 [[피파 온라인 4]]는 런칭 이후 '안드리 셰브첸코'를 인게임에 사용했다가 우크라이나어 발음법을 인게임에 적용하면서 '안드리 셰우첸코'로 이름 표기를 변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